조선일보 (2003.1.3)

[사람들] ‘한국 인터넷 代父’에 뜻깊은 사은회  (2003.01.03) 



전길남(全吉男) 박사에 대해서 말하자면 참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일본에서 태어나서….”

3일 저녁 서울 남산의 국립중앙극장 내 퓨전식당. 포크가수 한대수씨가 타령 같은 노랫말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최근 발표한 자기 노래 ‘호치밍’을 가사만 바꿔 특유의 탁한 목소리에 실었다.

헌가(獻歌)의 대상은 이날 회갑을 맞은 전길남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과 교수. “그는 한국과학기술원 전산과에 salab이라는 특이한 ‘왕따’ 연구실을 차립니다. 제자들을 키우기 위해 그가 무엇을 했느냐? 록 클라이밍(rock climbing)을 시키고, 스키장으로 엠티(MT)를 갔습니다.”

한대수씨의 노랫말처럼 전 교수는 1979년 우리 정부의 해외 과학자 유치 계획에 따라 미국에서의 연구생활을 접고 귀국, 한국에 IT(정보기술)산업의 씨앗을 뿌린 한국 인터넷의 대부(代父)다. 1982년 전 교수는 서울대와 한국전자기술연구소를 전용회선으로 연결함으로써 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다.

기념 논문집 증정과 함께 열린 이날 이색 이벤트를 준비한 사람들은 전 교수 아래에서 인터넷을 배운 제자들. 허진호 아이월드네트워킹 사장, 정철 삼보컴퓨터 사장, 박현제 주인넷 대표, 강성재 아이큐브 사장 등 한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이끈 IT업계의 기린아들이 수두룩하다.

이날 행사는 제자들의 첼로 연주와 축가, 무용 공연 등으로 이어졌다. 화상으로 전 교수의 약력을 소개하던 이동만 한국정보통신대학원 교수가 “인터넷으로 훈장을 받으셔야 하는데, ‘딴 일’로 1987년 체육훈장 기린장을 먼저 받았다”고 하자 장내에 폭소가 쏟아졌다. 프로급 산악인인 전 교수가 유럽의 마테호른 북벽을 오른 공로로 받은 훈장 얘기였다.

제자들이 마련해준 생일잔치장에서 전 교수는 “노인과 가난한 사람, 장애인들도 인터넷에 쉽게 접근할 수있는 시대를 만들자”는 강연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폭설이 내린 남산의 겨울 밤은 같은 길을 걷는 제자와 스승의 만남과 함께 깊어갔다.


(金基哲기자 kichul@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