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03.1.20)

“인터넷 도입 20년만에 참다운 정보사회로 진입”

한국 인터넷의 대부
전길남 카이스트 교수

“그전에는 나쁜 점을 들이대며 ‘이런 걸 왜 가지고 들어왔냐’고 타박하던 집사람이 이제야 ‘잘했다’고 해요. 저도 인터넷이 시민사회에 안겨준 힘을 보며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우리나라 인터넷의 대부로 불리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길남(60) 교수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천진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지난 1982년 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를 우리나라 최초로 연결하며 시작된 인터넷은 20여년만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스며들었다.

전 교수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2002년이 정보사회 원년”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이런 건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평가해야 할 일이지만, 지난해 월드컵과 여중생 사망사건, 대선이라는 계기가 잇따르면서 한국은 참다운 정보사회로 들어섰다”고 했다. “그전에는 스팸메일이나 바이러스 등 부작용이 많아 인터넷을 처음 들여왔다는 게 자랑스럽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태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1979년 해외 과학자 유치계획에 따라 한국 땅에 발을 디딘 전 교수는 “그 때는 참 고민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컴퓨터 한 대 못만드는 나라에서 인터넷을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고, 잘 이해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파격 대우를 받는 대가는 해야겠고, 고민 끝에 미 항공우주국에서 우주선을 연결하는 통신을 연구한 경험을 살려 인터넷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살짝 끼워넣는 식으로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전 교수는 “그 때 컴퓨터와 인터넷을 동시에 연구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인터넷은 아마 10년은 뒤쳐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가 우리나라 컴퓨터와 인터넷발전에 끼친 영향은 자신의 연구 영역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그의 제자들은 요소요소에서 정보통신 발전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3일 환갑을 맞아 어느덧 노교수 축에 들었지만, 그는 아직도 왕성한 인터넷 연구자다. 여러 대륙을 연결하는 기획인 아시아태평양첨단망(APAC)의 아·태 책임자로 일하면서 10기가bps 인터넷을 현실화시키는 데 골몰하고 있다. 현재의 인터넷시스템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은 그는 “이대로가다간 사용인구 급증이나 악의에서 비롯된 공격을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10년, 20년 뒤에 어떤 인터넷을 쓸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험벽을 오르는 전문산악인이기도 한 전 교수는 요즘도 해마다 한번씩은 히말라야 등에서 도전정신을 가다듬는다.

글 이본영, 사진 김진수 기자 ebon@hani.co.kr